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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S

오토다케 히로타다 - 꺽을 수 없는 의지(오체불만족)


이번 시간에는 지난 번에 이어 에릭슨의 가치 지향성 심리 발달 이론에 맞춘 두 번째 "의지"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 히로타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첫 번째 "희망"에 관련된 판매왕 빌 포터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분들은 아래글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2016/02/01 - [LEGENDS] - 판매왕 빌 포터(Bill Porter) - 역경의 삶 속에서 희망을 터득하다




2. 의지편 - 오체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에릭슨은 생애 주기별 중심가치에서 두 번째 심리사회적 발달 과제는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생애 첫 번째 발단 단계(출생 ~ 18개월) 에서 "희망"을 터득하고 이후 18개월에서 3세까지의 기간 동안 아동은 욕구와 사회 규제 사이의 대립 사이에서 자율성을 획득하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의지(Will)의 덕목을 터득하게 된다. 보통 배변훈련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듯이 아동은 배변을 보유하거나 배설하는 상반된 충동 속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법을 훈련하게 되고 이에 실패할 경우 수치심과 회의의 경험을 하게 된다. 유아기 시절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되는 실패와 수치의 경험 속에서 의지의 덕목을 터득함으로써 우리는 상충되는 힘이 존재하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적절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삶에서 의지의 가치를 터득한 대표적인 인물로 익히 유명한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를 들 수 있다.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 표지, 2001년)


1976년생인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팔다리가 없는 1급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팔다리가 겨우 10센티미터 남짓 자랐으며 정상적인 활동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다른 아이들이 그를 매우 신기하게 쳐다 봤으며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하는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 그는 아예 못하거나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만 할 수가 있었다. 그는 그럴때마다 그렇게 태어난 자신에 대해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오토다케는 그런 신체적 불편함에 굴하지 않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야구, 농구, 수영 등을 즐겼으며 고등학교를 마치고 와세다 대학 졍경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기도 하였다. 그의 행보는 다른 이들과 다들바가 없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스포츠 칼럼리스트와 강연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2001년에는 3월 대학 후배인 부인과 결혼하였으며 7년 만에 아이를 얻어 어느이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은 <오체 불만족>을 통해 그가 삶을 바라보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가 있으며 그의 강한 의지가 그를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개인의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그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운동회를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그에게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 시합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신체적 불편함을 갖고 있는 그가 다른 이들과 함께 뛰기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으나 그는 달리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그의 신체적 불편함을 고려해서 100m의 중간 지점인 50m에서부터 뛸 것을 권했고 그는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 시합 준비를 하였다. 드디어 운동회 날이 되어 100m 달리기 시합이 열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학생들보다 50m 앞에 선 그에게 쏠려 있었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학생들이 그를 추월하여 달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홀로 운동장에 남게 되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운동장에는 그를 응원하는 소리로 가득 찼고 그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20초 가량 늦었지만 완주하였다. 경기 직후 담임 선생님이 그에게 다가가 내년에도 또 달릴 것인지 묻자 그는 일각의 망설임도 없이 "네!" 라고 대답하였다. 훗날 그는 그 순간에 세상 누구보다도 더 큰 행복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위와 같이 의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실패와 수치 경험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의지를 통해 자신과 환경에 대한 진정한 통제감을 획득하게 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축약이 되어 삶에 대해 주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가 있다. 상실의 시대에 힘든 삶을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계속되는 실패와 수치의 경험을 잘 극복하기를 소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토다케가 이러한 강렬한 의지를 갖게 된 배경이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생각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혼자만의 힘으로 얻어진 결과는 아니었다. 오토다케 자신이 가진 초개성적(스스로 그렇게 표현함) 신체에 대해 그의 어머니가 한 첫마디가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뺨과 팔 사이에 연필을 끼워 글을 쓰는 방법을 알게 해줬으며,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포크로 식사하도록 가르쳤다. 또한 특별히 신체적 특이성과 관련해서 그를 보호하거나 장애라는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어머니의 그를 대하는 인식이 그가 더욱 성숙한 자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다. 또한 그에게 있어 또하나의 축복이라면 그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줄곧 담임을 맡았던 다카기 선생과의 만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카기 선생은 오토다케가 가진 신체적 불편함 때문에 배려라는 이름의 차별을 행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청소를 시키고 체육시간에도 제외시키지 않고 항상 함께 하였다. 아마도 이런 주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오토다케가 더욱 긍정적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오토타케 외에도 닉부이치치, 태호 등 비슷한 신체적 불편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지를 갖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함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로서 한가지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 불편함이 불평등으로 이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동정과 연민 보다는 동일한 사회 구성원의 지위 속에서 함께 할 때 그들의 의지가 더욱 굳건해 지고 빛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신체적 불편함을 갖고 있는 닉 부이치치가 전하는 강렬한 삶의 메시지를 보면서 끝마치고자 한다. "난 내 삶을 즐기고 있고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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